신종군 이효백 묘역
시향토문화재/신종군 이효백 묘역 이미지
  • 지정번호 : 시향토문화재 제8호
  • 지정일자 : 2008. 9. 17
  • 명 칭 : 신종군 이효백 묘역
  • 소 재 지 : 성남시 분당구 석운동 50-8
  • 소 유 자 : 전주이씨 덕천군파 신종군 종회

신종군(新宗君) 이효백(1433~1487)의 묘역은 조선 전기 묘역으로써 역사적 가치를 지닌 성남시의 향토유적이다.
이효백의 본관은 전주(全州), 자는 희삼(希參)으로, 조선 정종(定宗)의 제10왕자 덕천군(德泉君) 이후생(李厚生)의 장남이다. 그는 궁술(弓術)이 비상하여 ‘태조의 신궁’이라고 불렸으며 <조선왕조실록> 에도 궁술에 관한 기록이 여러 차례 있고, 묘역 또한 활과 관련한 일화가 전해진다. 이에 세조의 특명으로 당상관에 오르기도 하였다. 이후 정의대부(正義大夫)에 오르고 1467년 신종군(新宗君)에 봉하여졌다. 그 해 이시애(李施愛)의 난으로 세조가 친정(親征)하려 할 때 선봉장으로 내정되기도 하였다. 이듬해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1468년 승헌대부(承憲大夫)에 올랐다. 묘소는 그가 늘 활을 쏘고 사냥하던 곳인데, 하루는 문득 이곳에 작은 의자를 갖다 놓고 앉아 사방을 둘러본 후 “내가 죽으면 반드시 이곳에 장사지내라.”하였다 한다. 또 하루는 활시위를 당기다가 갓끈에 부딪혀 갓끈의 큰 구슬을 잃은 적이 있었는데, 장례 때 광중(壙中)에서 그 구슬이 나왔다고 전해온다.
묘역은 봉분 높이 240㎝, 직경 550㎝로 배위(配位) 예안현부인 최씨(禮安縣夫人 崔氏)의 묘와 원형의 쌍분으로 용미와 활개를 갖추고 있다. 그 외에 묘표, 상석, 혼유석, 향로석, 장명등, 상석 좌우로 8각 망주석과 문인석 한 쌍 등의 석물을 갖추고 있으며 3m의 거리를 두고 2단의 계체석을 두었다. 그 중 묘표는 전·후면에 있고, 전면의 비문은 마모가 심하다. 건립 연대는 1504(연산군 10)년이다. 다수의 석물 중 문인석은 복두(幞頭)에 계란형 얼굴이며 코는 크고 뭉툭하며 옷소매가 길다. 크기는 좌가 203㎝, 우는 194㎝이며, 얼굴 부분은 좌가 64㎝, 우가 58㎝이다.
묘역에서 묘지석(墓誌石)이 출토되어 현재 경기도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. 1487(성종 18)년에 제작된 것으로 청화백자에 음각하였다. 지석은 모두 6편인데 첫 번째 지석은 분실하였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