송산 조견 선생묘
시향토문화재/송산 조견 선생묘 이미지
  • 지정번호 : 시향토문화재 제3호
  • 지정일자 : 2001. 2. 20
  • 명 칭 : 송산 조견 선생 묘
  • 소 재 지 : 성남시 중원구 여수동 산30
  • 소 유 자 : 평양조씨 송산공 종회

조견(趙狷, 1351~1425)은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으로 본관은 평양(平壤), 자는 종견(從犬), 호는 송산(松山)이고, 초휘(初諱)는 윤(胤)이다. 정숙공(貞肅公) 조인규(趙仁規, 1227~1308)의 증손이자 평양부원군(平壤府院君) 조덕유(趙德裕, 1314~1352)의 아들이며, 영의정 조준(趙浚, 1346~1405)의 동생이다. 한때 승려였으나 환속하여 1371(공민왕 20)년 문과 급제하고 여러 관직을 거쳐 영남안렴사(嶺南按廉使)를 지냈다. 조준(趙浚, 1346~1405)과 함께 이성계(李成桂)를 추대, 조선을 건국한 후 개국공신으로서 상장군(上將軍)이 되고 평양군(平壤君)에 봉해졌다. 1394년 경상도도절제사, 1397년 지중추원사, 1403년 좌군도총제가 되고 평성군(平城君)에 봉하여졌다. 1411(태종 11)년 평성군(平城君)으로 개봉(改封)된 후 공조판서를 역임하였으며 1421(세종 3)년 궤장(几杖)을 하사받고 부원군(府院君)에 진봉(進封)되었다. 진하사(進賀使)와 정조사(正朝使)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오기도 하였다.
조견의 묘역은 여말선초(麗末鮮初)의 유행대로 3단의 계체석(階砌石) 구조를 갖춘 방형(方形) 봉분(높이 180cm)이며, 이와 함께 상석, 문인석, 장명등의 옛 석물이 진설되어 있다. 봉분 하단에는 사각호석을 마련하였으며, 주위의 좌·우·후 3면에는 90㎝의 간격을 두고 60∼110㎝ 높이의 축대를 쌓아 활개를 대신하고 있으며, 봉분 양측에는 높이 54X35X100㎝의 석주를 세웠다. 또한 곡장(曲墻)의 기단 및 장방형(長方形) 주초석(높이 102㎝)이 남아 있다. 2단의 묘정(墓庭)에 상석(높이 28㎝)과 문인석, 3단의 묘정에 장명등을 두었다. 봉분 좌우에 세워져 있는 안두(按頭)의 문인석(文人石)은 좌가 높이 148㎝의 3등신의 신체 비율이며 좌측 귀가 파손되어 있다. 복두공복(幞頭公服)을 착용하고 있으며, 얼굴 광대뼈가 튀어나오고, 몸집이 상체에서 하체로 내려갈수록 가늘어지는 양식상의 특징이 있다. 또 장명등(높이 76㎝)은 개석(蓋石)이 없어지고 화사석(火舍石)의 상부가 훼손된 상태이다.
조선 초에 관직을 제수한 기록과 조선 중기 고려조의 충신으로 인정받은 기록이 있어 행적에 대한 이견이 있으나, 본 묘역은 여말선초의 사대부 묘제를 나타내는 유적이자 인근 묘역(자손묘)을 통해 고려 및 조선시대의 묘제를 함께 조망할 수 있다는 데 의의가 있다.